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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병법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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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병법
  • 평점평점점평가없음
  • 저자제갈량 (지은이), 박광순 (옮긴이) 
  • 출판사범우사 
  • 출판일201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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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장원》
이 책은 대체로 통솔자의 길을 논한 부분과 병법을 논한 부분으로 대별되는데, 중국의 병서 중에서도 통솔자의 길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통솔자론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일종의 지도자론 혹은 관리직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병법론에는 고대의 병법의 진수가 농축되어 있다.
물론 통솔자 한 사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훌륭한 부하들의 협력이 없으면 안된다. 그러나 부하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 일정한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솔자가 필요하다. 그 통솔자의 행동 여하게 따라 그 집단의 운명이 결정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통솔자론의 필요성은 더 길게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편의십육책》
제갈량은 이 《편의십육책》에서 하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한 가족을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그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군대는 '나라를 보존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중대한 임무를 디고 있는 하나의 근본인 셈이다. 그리고 국방 전략과 국가 경영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보고 이 책 속에서 이 두 가지 통치 분야를 하나로 묶어 웅대한 치국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론이라 하더라도 병법론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저자소개

중국 삼국시대의 저명한 정치가다. 자(子)는 공명(孔明)이고 동한시대 영제(靈帝) 광화 4년(181) 7월 23일에 서주의 낭야군 양도현에서 태어났다. 부친 제갈규(諸葛珪)는 태산군의 승(丞)을 지냈고, 세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첫째 아들이 제갈근(諸葛瑾), 둘째 아들이 제갈량(諸葛亮), 막내아들이 제갈균(諸葛均)이었다. 제갈량은 어릴 적에 생모인 장씨(章氏)가 병으로 사망했고, 이에 부친은 얼마 후에 재가했다. 이후 부친 역시 영제 중평(中平) 6년(188)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때에 제갈량은 나이 겨우 8세로 그의 가족 모두는 숙부인 제갈현(諸葛玄)에게 기탁했다. 제갈현은 예장 태수로 부임하며 어린 제갈량, 제갈균과 두 명의 조카딸들을 데리고 갔고, 나이가 많은 제갈근과 그 계모는 고향에 남겨 두었다.형주목 유표에게 의탁한 제갈현을 따라 양양에 거주하던 제갈량은 제갈현 사후 방덕의 보살핌으로 양양의 서쪽 교외인 융중에서 농사일과 독서를 하며 은거 생활을 했다.

건안 12년(207) 유비의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의 군사가 되었다. 그는 조조와 대항하기 위해 손권과 동맹을 맺고 촉한과 한실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건흥 원년(223) 유비가 백제성에서 대패한 후 사망하자 그 아들 유선을 후주로 즉위시키고 보필했으며 촉한의 내정에 주력했다. 이후 중원을 평정하기 위해 6차례에 걸쳐 북벌을 단행했으나 군량미 부족 등 여러 원인으로 실패하고 건흥 12년(234) 과로로 인해 오장원에서 사망했다.

한줄 서평